AED

생명을 구하는힘
하트스타트

멈춘 심장이 다시 "쿵 쿵 쿵… "

 

- 터미널·경기장… 보급 확대키로

- 1분 안에 실시할땐 생존율 90%

- 백화점 등 설치 의무규정 없어 맹점

 

지난해 8월 10일 구름처럼 몰린 휴가객들로 북새통이던 부산 송정해수욕장에서 파키스탄인 A(35)씨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감시망루에 있던 부산 북부소방서 김현수 구급대원이 달려 갔을 때 A씨는 호흡도, 맥박도 없는 상태였다.

 

김 대원은 가슴을 압박하고 입으로 숨을 불어넣는 '심폐소생술'을 한 뒤 휴대하고 있던 기계를 바로 연결해 심장에 전기충격을 줬다. AED, 즉 자동심장제세동기(自動心臟除細動機)였다. 다시 심폐소생술을 하자 곧 A씨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의식도 돌아왔다. 김 대원은 "AED로 응급처치를 하지 않았다면 생명을 잃거나 뇌 손상으로 인한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었다"고 전했다.

 

응급의학계에 따르면 심장마비 직후 4~6분이 환자의 생사를 가른다. 심장이 박동을 멈춘 채 경련하는 상태에서 1분 안에 전기충격을 주면 생존율이 90%까지 높아지지만, 1분 늦어질 때마다 7~10%씩 떨어진다. 2007년 기준 119구급대의 출동시간은 평균 6분으로, 지역에 따라 10분이 넘기도 했다. 구급대만 기다리다가는 심장마비 환자를 소생시키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AED는 이럴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응급처치 기기다. 심장이 가늘게 떨리며 경련하는 상태(細動)를 없애(除) 정상적으로 박동하게 한다는 의미로 '자동제세동기'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흔히 '전기심장충격기'로 불린다.

 

심장마비 환자를 구할 수 있는 AED가 철도 역사, 고속버스 터미널 등 전국 주요 시설에 속속 보급되고 있다. 현재 AED는 인천국제공항(33대), 국회(4대) 등에 갖춰져 있고, 코레일도 3월부터 올해 말까지 서울역, 수원역, 대전역 등 16개 전국 주요 역사와 운행 중인 46개 KTX 열차 안에 AED를 최소 1대 이상씩 설치하기로 했다.

 

지난해 6월 개정된 응급의료법은 주요 다중이용시설에 AED 설치를 의무화했다. 시행령에 따르면 대개 연면적 2,000㎡ 이상, 시설에 따라 일 평균 이용객이 1,000명~1만명을 넘는 공항과 철도 역사, 여객버스 터미널, 항구 대합실, 운동경기장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처벌 규정이 따로 없고 대당 가격이 국산 기준 400만원 안팎이어서 보급이 미미한 실정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는 이 달 말까지 지역별 주요 시설의 AED 설치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AED 설치를 적극 독려하기 위한 조치다.

 

AED는 사용법이 간단하다. A4 용지 절반 크기의 본체에 전원을 켜고, 환자의 오른쪽 가슴 윗부분(빗장뼈 아래)과 왼쪽 옆구리 갈비뼈 하단 부위에 패치를 붙이기만 하면 된다. AED는 환자의 태를 분석해 필요하면 자동으로 전기충격을 가한다.

 

효과는 놀랍다. 미국 응급의학회에 따르면 시카고 오헤어공항은 AED 80여대를 설치, 지난해 8월까지 심장마비 환자 45명 중 31명을 살렸다. 환자를 발견하고 AED를 작동한 사람의 절반 이상이 초보 사용자였지만, 소생률은 차이가 없었다. 시애틀은 2003년 국제공항에 200대를 비롯해 시내에도 100~200m마다 AED를 설치, 심장마비 환자 생존율을 도입 전 5~10%에서 지난해 40%까지 높였다.

 

황성오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은 "국내 심장마비 발생은 연간 3만~4만명인데 생존율이 2~4% 정도로 매우 낮다"면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주요 시설에 AED가 대량 설치되면 생존율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법에 AED 사용 의무 교육 등이 규정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는 지난해 5월 본회의장, 본관 면회실, 도서관 중앙홀 등에 AED를 총 4대 설치했지만, 설치 당시 시연회를 한차례 했을 뿐 제대로 된 사용자 교육은 한 적이 없다.

AED는 사용법이 간단하지만, 응급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하려면 사전 교육이 필요하다. 대한심폐소생협회, 시도 응급의료정보센터 등에서는 심폐소생술과 함께 AED 사용법을 일러주는 4시간짜리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AED 설치를 의무화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안명옥 전 의원은 "당시 비용이 많이 든다며 일부 부처가 반발해 의무 교육 대상자와 처벌 규정 등을 넣지 못했다"면서 "시행령에서 규정하지 않은 백화점, 호텔, 지하철역 등에도 자발적으로 설치되기만 기대할 뿐"이라고 아쉬워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무 설치 시설인데도 AED를 구비하지 않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면 건물 관리자가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는 만큼 설치하는 곳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 출처: 한국일보

* 게재일자: 2009-01-15

*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